1. 경외심인가, 침범인가?
지구 외 천체에 종교적 또는 문화적 유적을 세운다는 발상은 언뜻 숭고해 보인다. 인간은 늘 하늘을 바라보며 초월적 존재를 떠올렸고, 우주로 향한 첫걸음조차 신성한 의미로 포장됐다. 그래서 어떤 이는 달이나 화성에 ‘신전을 세운다’ 거나 ‘기념비를 남긴다’는 상상을 마치 인간의 위대한 여정을 축복하는 행위처럼 여긴다. 하지만 한 걸음만 물러서 생각해 보면, 이는 또 다른 형태의 침범일 수 있다. 아직 누구의 것도 아닌, 심지어 생명조차 검증되지 않은 천체에 인간의 특정 신념이나 문화를 박제하듯 남긴다면, 그것은 경외심이 아니라 소유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특히 종교 유산은 특정 신념 체계를 전제하기 때문에, 그것이 보편적 문화로 오해될 가능성도 크다. 과연 인류는 자신들의 발자국을 남기며 우주를 ‘의미화’할 자격이 있을까? 그 질문을 하지 않은 채 유적을 세운다면, 그것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행성의 의미를 재단하는 행위가 된다.
2. 누구의 신념이 우주를 대표하는가
지구에는 이미 수천 개의 문화와 종교가 존재하며, 그 안에서도 해석과 의례는 천차만별이다. 이처럼 다양한 지구 문명을 대표할 어떤 단일한 유산이란 애초에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특정 국가나 집단이 우주에 종교적 유물을 세운다면, 그 자체로 편향성을 갖게 된다. 이는 곧 우주공간에서의 ‘문화 식민화’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자본과 기술을 갖춘 소수 국가가 자기네 전통이나 상징을 우선시한다면, 그것은 사실상 문화적 독점 행위다. 문화유산이 중립적이라고 믿는 시도는 환상일 수 있다. 예컨대 십자가, 불탑, 메소포타미아 조형물 등은 각기 다른 집단에게는 위엄이자 신성의 상징일 수 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낯설거나 심지어 불쾌한 인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우주 공간은 아직 어느 신념도, 어느 민족도 점유하지 않은 ‘무소속’의 장이다. 그 공간에 인간의 특정 정체성을 새긴다는 것은, 다른 가능성을 차단하고 우주의 다의성을 훼손하는 행위일 수 있다.
3. 기념인가, 점유의 신호인가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은 기념비를 세울 때 종종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의도를 함께 드러냈다. 땅을 밟고 깃발을 꽂는 행위는 단순한 상징을 넘어 '여기는 우리의 것이다'라는 무언의 선언이었다. 그렇다면 달이나 화성에 문화적 혹은 종교적 유적을 세우는 것도, 마찬가지로 '점유'의 언어일 수 있다. 아무도 살지 않는 행성이라 하더라도, 그 위에 무엇인가를 건축하고 남긴다는 행위는 이미 물리적·상징적 지배의 첫 단계가 된다. 이는 우주 조약(Outer Space Treaty)이 강조한 ‘모든 인류의 공동 자산’이라는 이상과 충돌할 수 있다. 물론 인류의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욕망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흔적이 '공동의 기억'이 아닌 '특정한 기념'으로 작동할 때, 이는 곧 분쟁의 씨앗이 된다. 지구 외 천체에 유적을 세우는 문제는 단지 예술적, 종교적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우주 공간의 소유권과 권리 구조’를 둘러싼 윤리적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