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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실험과 동물윤리의 정당성

by hexadragon500 2025. 5. 5.

 

과학 발전의 희생인가. 선택받지 못한 생명인가

 

1957년, 구소련은 세상 최초로 개 ‘라이카’를 스푸트니크 2호에 실어 지구 궤도에 올렸다. 이후로 원숭이, 생쥐, 토끼, 심지어 거북이까지, 수많은 동물들이 실험 대상으로 우주로 향했다. 과학은 이들이 남긴 데이터로 인해 큰 진보를 이루었다고 자평하지만, 과연 이들이 치른 대가에 대한 윤리적 성찰은 충분했을까? 당시엔 생명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으며, 동물 보호법은 과학기술이라는 ‘대의’ 앞에 뒷전으로 밀렸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인류는 동물을 단순한 실험 도구가 아닌 ‘감각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며, 실험실 안팎에서 동물의 고통과 복지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주 실험에 있어서도 이 기준은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 중력 부재, 방사선 노출, 고립 환경은 인간에게도 심리적·신체적으로 치명적이다. 이러한 실험 환경에 동물을 노출시키는 행위는 단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데이터’라는 이유만으로 정당화되기 어렵다. 게다가 대부분의 우주 실험에서 동물은 살아 돌아오지 못하거나,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한다. 과학의 진보가 필요하다는 논리는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생명의 고통을 전제로 한다면, 우리는 정말 진보한 것인가? 오늘날의 과학이 그토록 자랑하는 인공지능, 가상 시뮬레이션, 바이오 센서 기술은 이미 동물 실험 없이도 상당한 수준의 대체 실험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가능하냐’가 아니라 ‘해야 하느냐’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인간 중심 사고의 연장선인가, 과학의 자기반성인가

동물을 우주에 보내는 결정은 결국 인간의 시선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우주라는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고자 하고, 이를 위해 생물학적 반응을 관찰하려 한다. 문제는 그 대상이 스스로의 의사표현조차 불가능한 존재들이라는 데 있다. 인간 중심적 사고는 오랜 시간 생명체 사이의 위계 구조를 정당화해 왔다. 인간은 사고하고 언어를 사용하는 유일한 존재라는 자의식 속에, 다른 동물들을 의도적으로 도구화해 왔다. 우주 실험도 다르지 않다. 라이카의 죽음이 ‘인류의 도약’이라 칭송받을 때, 그 생명은 ‘당연히 감수해야 할 희생’으로 치부됐다. 그러나 이런 논리가 여전히 유효한가? 오늘날 우리는 인간이 유일한 이성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점점 받아들이고 있다. 까마귀, 문어, 돌고래 등은 고등 인지 능력을 보이며 문제 해결, 감정 반응, 사회적 행동을 보인다. 심지어 실험용 쥐 나 원숭이도 인간과 유사한 스트레스 반응을 나타내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동물들을 극한의 우주 환경에 노출시키면서, 그것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면, 우리는 결국 ‘선택받지 못한 생명’들을 착취하는 셈이다. 과학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이해를 넓히기 위한 도구지만, 이 도구가 어떤 생명의 고통 위에 서 있다면, 그것은 과연 바른 이해인가? 인류는 지구를 넘어선 윤리적 책임감을 갖기 시작해야 한다. 이제는 우주 실험도 과학자 내부의 기술적 문제만이 아니라, 철학자, 윤리학자, 일반 시민까지 포함하는 공론의 장에서 다뤄져야 한다. 과학은 그 자체로 가치중립적이지만, 실천의 순간에는 언제나 윤리적 판단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대안은 가능한가, 그리고 필요하기만 한가

“그렇다면 우주 생명과학 연구는 멈춰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현실적이면서도 어려운 물음이다. 사실 우주에서의 생물학 연구는 향후 인류의 우주 거주 가능성을 가늠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뼈와 근육의 변화, 면역계 반응, 심혈관계 변화 등은 우주 장기 거주의 현실적인 장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동물 실험 외의 다른 방식들이 충분히 고려될 수 있는 시대다. 바이오칩 기술, 디지털 트윈 시스템, 생체모사 모델링, 인체 세포를 활용한 실험 플랫폼은 실제 동물보다 더 정밀하고 반복 가능성이 높은 데이터를 제공하기도 한다. 특히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는 이미 인간 유래 세포를 활용한 실험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동물 실험의 필요성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무엇보다 대안이 가능한가라는 질문보다 중요한 건, 과연 우리가 이러한 실험을 '꼭 해야만 하는가'라는 성찰이다. 지금까지 많은 우주 생물학 연구는 동물의 희생으로부터 ‘경험적 데이터’를 얻는 데 초점을 두었다. 하지만 반복된 실험 결과는 이미 포화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새롭고 획기적인 통찰을 얻기 위해서는 오히려 기술적 혁신과 윤리적 전환이 병행돼야 한다. 결국 우주 실험에서 동물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는 단지 윤리적 요구 때문만이 아니라, 기술 발전이라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과학은 스스로를 정당화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지금은 기술보다 윤리가 앞서가야 할 시점이며, 동물 없는 우주 실험을 위한 전환은 더 이상 '이상'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야 한다.